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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인물, 갈등, 성취

by 초록연두하늘 2025. 10. 20.

1991년 MBC에서 방영된 드라마 '마의'는 조선 시대의 명의 허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신분제 사회에서 하층민이 의술로 성공해 가는 과정을 그린 역사 드라마다. 조선의 의료사와 인간 중심의 가치관을 드라마로 풀어내며 시청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고, 단순한 의학 드라마를 넘어 인간의 고난과 도전, 극복의 의미를 다층적으로 보여준다. 드라마의 중심에는 단순한 성공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진정성 있는 ‘의술’의 정신이 자리 잡고 있다. 당시에는 신분 상승이 불가능에 가까웠던 시대였지만, 자신의 능력과 열정으로 운명을 바꿔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약 사진

하층민에서 명의로, 인물의 성장 서사

'마의'는 조선 후기 백정 출신의 청년 백광현이 신분의 벽을 넘어 어의가 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드라마의 인물 서사는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다. 백광현은 처음부터 뛰어난 재능을 지닌 인물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멸시받고 배척받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작은 일부터 시작한다. 죽은 동물의 시신을 해부하며 생리 구조를 파악하고, 병든 사람을 살피며 체득한 경험을 통해 조금씩 의술을 익힌다. 그의 의학적 지식은 책이나 스승에게서 얻은 것이 아닌, 철저히 경험과 반복을 통한 결과였다. 이 부분에서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현실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누구나 노력하면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백광현이라는 인물을 통해 설득력 있게 전달한 것이다. 특히 인물 간의 갈등 속에서도 주인공이 중심을 잃지 않고 사람을 살리는 데 초점을 맞춘 점은 드라마의 진정성을 부각하는 대목이다.

조선 사회의 구조와 신분 장벽의 현실

조선 시대는 엄격한 신분 제도를 바탕으로 사회가 운영되었다. 백정은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계급에 속했으며, 관직은 물론 교육의 기회조차 제한되었다. ‘마의’는 이 같은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고자 하는 개인의 분투를 사실감 있게 묘사한다. 백광현은 그저 개인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의술을 택한 것이 아니다. 그는 사람을 살리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의술을 배운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아무리 뛰어난 의술을 지녔다 하더라도 출신이 낮다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했고, 때로는 죽음의 위기까지 마주해야 했다. 이런 갈등은 단순한 드라마적 장치가 아니라, 조선 후기 사회에서 실제로 존재했던 ‘신분 장벽’에 대한 재현이다. 백광현은 그러한 벽을 뛰어넘기 위해 자신의 진심을 증명해야 했고, 이는 반복되는 수난과 좌절 속에서 더욱 빛났다. 드라마는 단순한 영웅 서사가 아닌, 구조적 한계와의 대결이라는 차원으로 확장되며, 오늘날에도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

드라마 속 장면 중, 백광현이 환자의 목숨을 살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공을 인정받지 못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그때의 울분과 무력감은 단순히 드라마를 넘어서 지금 이 사회의 문제와도 연결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마치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신분과 편견에 싸우고 있는 듯했다.

의술의 본질과 인간 중심의 가치

‘마의’는 단순한 의료 행위를 넘어, 의술의 본질적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백광현은 약재를 고르고, 침을 놓고, 진맥을 하는 모든 과정에서 가장 먼저 ‘환자의 상태’를 고려한다. 당시에는 의술이 귀족의 전유물이거나 권력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그는 오직 사람을 살리는 행위에만 몰두한다. 이 점에서 드라마는 인간 중심의 의학이라는 현대적 시각을 조선 시대에 접목시킨다. 특히 드라마 후반부에 이르러, 백광현이 정치적 이용이나 명예를 거부하고 외진 시골로 떠나는 장면은 그가 의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명의이기 이전에 진정한 ‘의사’였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의료행위는 과학적 치료를 넘어서, 공감과 윤리, 책임이 요구되는 직업이다. 이 드라마는 그런 의료의 기본 가치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의술은 곧 사람을 살리는 도구다”라는 주인공의 대사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단순히 기술이 아닌, 생명을 다루는 ‘사람 중심’의 직업이라는 점에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역사와 의학, 인간의 성장과 구조적 현실을 정교하게 엮어내며, 당대와 현재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백정 출신이라는 신분적 한계를 뛰어넘은 백광현의 삶은 우리에게 ‘노력’과 ‘진심’의 가치를 다시금 되새기게 만든다. 드라마 속에서 보여주는 의료에 대한 자세, 환자에 대한 공감, 그리고 인간 중심의 윤리는 오늘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과도 맞닿아 있다. 이 작품은 과거를 배경으로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는 드라마로서,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