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MBC에서 방영된 ‘킬미힐미’는 일곱 개의 인격을 가진 남자 주인공과 그의 주치의가 되어가는 여주인공 사이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심리극이다. 단순한 로맨스 드라마를 넘어서, 트라우마와 정신질환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정면으로 다루며 대중성과 메시지의 균형을 이뤄낸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이 글에서는 다중인격이라는 복잡한 소재를 어떻게 드라마적으로 풀어냈는지, 자아 정체성과 치유의 의미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다중인격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킬미힐미’는 기존 드라마에서 자주 다뤄지지 않았던 DID(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전면에 내세운다. 주인공 차도현은 어린 시절 겪은 폭력과 학대로 인해 일곱 개의 인격을 갖게 된 인물로, 각 인격은 성격, 말투, 심지어 사고방식까지 뚜렷하게 구분된다. 이 드라마는 이를 단순한 캐릭터 쇼로 소비하지 않고, 인격 하나하나가 형성된 이유와 그 존재의 필요성을 서사 속에 풀어냄으로써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 예를 들어 분노의 인격 ‘신세기’는 어린 시절 억눌린 감정의 발산이며, 보호자 인격인 ‘페리박’은 안전을 갈구하는 마음의 반영이다. 이런 구성은 자아 분열을 단순히 병리적으로만 보지 않고, 생존을 위한 심리적 장치로 해석한다는 점에서 드라마의 깊이를 더했다. 또한 제작진은 각 인격을 연기하는 지성의 연기를 통해 시청자에게 그 복합적인 심리 상태를 효과적으로 전달했고, 그 결과 단순한 공감에서 나아가 이해와 수용으로 이어지는 감정의 흐름을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 ‘킬미힐미’는 정신질환을 소재로 삼으면서도 그것을 낙인찍기보다는 인간 존재의 복잡성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전개되며, 드라마 콘텐츠가 사회적 인식 개선에 기여할 수 있음을 입증한 사례로 남았다.
자아의 분열, 그리고 통합의 여정
극의 중심에는 단순히 다양한 인격의 등장보다도 주인공이 자신의 자아를 어떻게 통합해 가는가에 대한 심리적 여정이 놓여 있다. 차도현은 각 인격의 등장으로 인해 일상생활은 물론 인간관계에서도 큰 혼란을 겪지만, 점차 인격들이 나타난 이유를 이해하고, 그들과의 내면 대화를 통해 스스로를 치유하려는 노력을 시작한다. 이는 단지 병을 극복하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의 상처를 직면하고 그 안에 숨겨진 감정을 수용하는 일이다. 드라마는 이 과정을 매우 섬세하게 묘사한다. 예컨대, 트라우마의 실체를 회피하던 주인공이 마침내 그 기억을 마주하는 장면에서는, 단순한 극적 반전 이상의 감정적 해방과 인간적 승화가 이루어진다. 또 다른 인격들과 이별하는 순간, 차도현은 외롭지만 단단해진 자신을 발견하고, 시청자는 그 여정에 함께 감정 이입하게 된다. 이처럼 ‘킬미힐미’는 자아의 분열이라는 복잡한 정신현상을 드라마틱하게 풀어내는 동시에, 그 통합과정에서 인간 내면의 회복력과 자가치유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는 시청자에게도 자기 내면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지니며, 많은 이들이 ‘나도 내 안의 어떤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는가’를 자문하게 한다. 결과적으로 이 드라마는 심리학적 통찰을 흥미롭게 풀어낸 감성 콘텐츠로서의 성공을 보여주었다.
지성의 연기와 연출의 정교함
‘킬미힐미’가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데는 배우 지성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그는 일곱 인격을 각각 독립된 인물처럼 표현했으며, 표정, 목소리, 걸음걸이, 대사의 템포까지 달리하는 연기 스펙트럼을 선보였다. ‘신세기’의 도발적 카리스마, ‘요나’의 귀엽고 장난기 많은 모습, ‘페리박’의 유쾌함과 따뜻함 등은 모두 동일 인물이 연기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개성적이었다. 이러한 연기는 단순한 변신이 아닌 인격 내면의 진정성까지 끌어낸 결과이며, 이는 주인공의 고통에 대한 시청자의 몰입도를 높이는 데 크게 작용했다. 연출 역시 이 복잡한 내러티브를 효과적으로 뒷받침했다. 인격 전환이 일어나는 장면에서는 조명, 카메라 워크, 음악의 톤이 즉각적으로 변화하며 시청자의 인지를 유도했고, 플래시백과 꿈 장면을 통해 트라우마의 기원을 점진적으로 드러내는 구성은 이야기의 깊이를 더했다. 또한 황정음이 연기한 오리진 캐릭터 역시 주인공의 치유 여정에 중요한 조력자로 등장하며, 치유는 누군가의 손을 통해 가능해질 수 있다는 따뜻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결과적으로 ‘킬미힐미’는 단순한 설정의 기발함을 넘어서, 배우의 연기력과 연출의 정밀함, 그리고 각본의 탄탄함이 시너지를 이룬 정통 심리 드라마로 완성되었다.
‘킬미힐미’는 정신질환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섬세하고 따뜻하게 풀어낸 드라마다. 자아의 파편을 통합하는 여정은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단순한 병리적 접근을 넘어서 깊은 감정적 울림을 남긴다. 지성의 몰입도 높은 연기와 연출의 정교함은 시청자에게 큰 몰입을 안겨주었으며, 이 드라마는 치유와 수용, 그리고 자기 이해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으로 남는다. 단지 한 인물의 회복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는 ‘숨겨진 자아를 끌어안는 용기’를 보여준 감동의 기록이다.